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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감정 기복, '경계성 성격장애'일까?... 환자·가족이 반드시 알아야 할 대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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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한 개인 스트레스의 범주를 넘어, 국가와 사회가 체계적으로 다뤄야 하는 핵심 공중보건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 전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이 75세 이전에 정신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글로벌 추세는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며, 실제로 2022년 우리나라 정신질환 진료 인원은 약 398만 명에 이르러 고혈압·관절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다양한 정신질환 가운데서도, 특히 '경계성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는 자아상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환자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 탓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거나 충동을 조절하는 데 현저한 어려움을 겪는다. 즉 환자 개인 의지만으로는 증상을 개선하기 어려울 수 있어, 세심한 의학·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가천대길병원)를 만나 경계성 성격장애의 의학적 진단 기준과 치료적 접근법, 나아가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가족 등 주변인과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처 방안을 들어봤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단순히 '예민하다', '의지가 약하다' 같은 성격 문제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요, 의학적으로는 왜 이것을 질환으로 봐야 하나요?
이는 경계성 성격 장애뿐 아니라 다른 정신 질환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원인은 복합적으로 봅니다. 유전적, 사회적 요인, 양육 환경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단순한 '의지 부족'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타고난 정서적 민감성이나 취약성과 양육 환경, 그 외 사회적 환경, 반복적인 트라우마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임상적 합의에 가깝습니다.

이런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만성적으로 정서 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충동성을 보이고, 대인 관계의 불안정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 tr)에도 명시된 질환입니다. 만약 이를 '의지 부족'으로 본다면, 치료 대신 불필요한 낙인을 찍게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우울증 등 다른 기분 장애가 특정 시기에 '삽화적(episodic)'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성격 장애는 초기 성인기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행동과 사고 패턴이 만성적으로 두드러진다는 차이가 있어 간과되거나 과잉 진단될 소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감정 기복과 '경계성 성격 장애'를 구분하는 차이는 무엇인가요?
핵심은 '불안정성'과 '충동성'입니다. 대인 관계, 자아상, 정서 등 여러 면에서 극심한 불안정성을 보입니다. dsm-5 진단 기준 9가지 중 5가지 이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진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림받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이상화했다가 이내 평가절하하는 불안정한 대인 관계 ▲불안정한 자아상과 정체성 ▲반복적인 자살 행동이나 자해 ▲만성적인 공허감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패턴이 초기 성인기부터 꾸준히 지속되며, 무엇보다 이로 인한 기능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증상이 다른 정신 질환이나 의학적 상태로 더 잘 설명되지 않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증상이 자연스럽게 호전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의학적 근거가 있나요?
경계성 성격 장애는 불안정성이 핵심이므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은 시기에 증상이 심해집니다. 일반적으로 20대, 즉 성인기 초기는 학업, 직업, 주거, 대인 관계 등 삶의 여러 측면이 불안정한 시기입니다. 이 때문에 증상이 최고조에 달하고 자살 위험도 가장 높을 수 있습니다.

반면 40대 이후, 즉 성인 중기로 접어들어 삶이 안정되면, 자해나 충동성 같은 급성 증상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성적인 공허감이나 대인 관계의 불안정성 등은 잔존할 수 있으며, 오히려 고립감, 우울감, 신체 질환 등이 강화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질환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치료를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환의 핵심 특성인 '불안정성'이 치료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기분의 급격한 변화나 충동 조절의 어려움으로 인해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다가도 금세 거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기보다 압도적인 감정의 고통에 매몰되어 소위 '병식(insight)'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 불안, 물질 오용 등 다른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도 빈번하여 약물 치료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치료 지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규칙적 생활 습관이나 취미 활동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수면, 식사 등 건강한 생활 루틴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아하는 취미나 과하지 않은 운동도 좋습니다. 특히 술이나 특정 물질은 충동성이나 자해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시간표를 짜는 것이 어떤 환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떤 환자에게는 더 간단한 방법이 맞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돌보는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한 행동과 결과가 어떠했는지 꾸준히 기록하며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경계성 성격 장애 환자는 주변인을 비롯한 치료자와의 관계에서도 불안정성을 보이기 쉽습니다. 거부당할 것이 두려워 먼저 관계를 포기하거나 극단적인 태도를 오가는 패턴이 치료 과정에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자와 주변인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명확한 경계와 구체적인 규칙을 함께 설정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핵심은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제한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불안정한 감정은 충분히 인정하고 수용해 주되, 위험한 행동이나 선을 넘는 행동에는 명확한 한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자해나 자살 위험이 있다면 구체적인 안전 계획을 세우고, 가족 등 활용 가능한 지지 체계를 동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환자를 돕고 싶은 마음에 깊은 대화를 시도하거나 트라우마에 대해 묻는 것은 도움이 될까요?
주변인이 어떤 역량을 가졌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일관된 원칙'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변인이 '내가 이 사람을 구해내겠다'는 생각으로 과잉 조력에 나서면, 환자와 주변인 모두 소진(burnout)될 수 있습니다. 환자 역시 과도한 기대를 가졌다가 피드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더 크게 실망하고 상대를 비난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지킬 수 있는 적절한 한계와 경계를 설정하고,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변인 역시 환자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으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환자가 감정적으로 폭발했을 때, 주변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그리고 자제해야 할 반응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 격앙된 순간에는 치료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주변인이 하지말아야 할 행동은, 환자와 똑같이 감정의 널뛰기를 하는 것입니다. ▲같이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등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는 것 ▲'너 그러면 나랑 끝'이라며 관계 단절을 위협하는 것 ▲자해 신호를 '관심 끌려는 행동'으로 치부하는 것 등은 피해야 합니다. 다만, 위기 행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과도한 관심이나 보상을 보이는 것 역시 해당 행동을 강화시킬 수 있으므로 적절한 선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미리 합의한 계획이나 규칙을 무시하지 않고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자타해 신호가 있을 때는 이를 무시하지 않되, '응급실에 간다'거나 '자살 예방 센터에 전화한다' 등 구체적인 안전 계획에 따라 대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환자와 주변인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우선 환자의 주변인들에게는 진단명이 환자를 비난하거나 재단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령 "너는 경계성 성격 장애라서 그렇게 극단적이다"와 같은 방식의 비난이나 낙인은 환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진단만을 근거로 상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주의가 필요합니다.

환자 본인의 경우, 자신이 겪는 주된 어려움이 분노 폭발인지 만성적인 무망감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합니다. 이때 핵심은 어떤 상황도 완벽하거나 최악이지 않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격렬한 감정 자체는 수용하되, 이를 표출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적절한 원칙을 수립하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성격 장애는 만성적인 특성을 지니므로, 치료 과정을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단기간의 호전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는 마음가짐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히 치료에 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